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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한다!
  • 설교일2018-04-29
  • 성경본문요한복음 4장 13-19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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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요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성도여러분, 사마리아 여인, 잘 아시지요?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 많이 들으셨지요. 사마리아 여인의 놀라운 변화도 아시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받지 못할 때의 모습처럼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하며, 사마리아 여인이 받은 은혜, 받은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다가 도중에, 수가라는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이르시게 되셨습니다. 때마침, 이 마을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고, 예수님은 여행에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때가 12, 한낮이었습니다.

이때,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대뜸 하는 말이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짜증을 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그에게 생수를 구했을 것이다.” 그러자 여인이 아니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런 생수를 구한단 말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영원한 샘물이 될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의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 그런 물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5명이나 있었으나, 지금 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사실 네 남편이 아니니라.” 그제 서야 여인은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할 때, 한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욕망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성 편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남자를 5명이나 바꾸고, 6번째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처음 보았지만 다 아십니다. 이게 예수님의 전지성입니다.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그런데도 여인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별별 남자와도 다 살아봤지만, 그의 목마름을 해갈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여인을 통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마시고 또 마셔도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속 마시고, 충분히 마셔도 계속 목이 마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이 없고, 목마를 때 짠물을 마신 것처럼, 오히려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이 생기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채울 수가 없습니다.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에서 이 물은 이 세상의 것을 가리킵니다.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 것으로는 인간의 목마름을 해갈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고 다시 목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욕망에 사로잡힌 이 여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우리도 과거에 이렇게 살지 않았나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나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야곱의 우물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마르고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더 소유하고 싶을 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채우려고 하다가는 그 욕망의 노예가 되고, 결국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요, 사상가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 한가에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유난히 땅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으로 시작해서 자기 땅을 조금씩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땅을 사기 위해서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사를 하고 돈을 모아 땅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땅을 계속 넓혀가던 중, 그는 한 마을의 촌장으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습니다. 다른데서 땅 한두 마지기를 살 수 있는 적은 돈만 내면, 하루 동안 걸어서 표시할 수 있는, 모든 땅을 주겠다는 제안입니다. 다만, 반드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자신이 출발했던 원래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 농부는 촌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아침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렸다가 출발했습니다. 농부는 되도록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중간에 쉬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도 않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리고 죽을 고생을 다한 후에, 아슬아슬하게, 해가 지기 전에 많은 땅을 확보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촌장으로부터 당신은 이제 어마어마한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을 듣던 순간, 그 농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농부는 2평도 채 안 되는 무덤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땅이 필요했던가요. 천하를 얻은들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12:20)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 하니라

우리는 물질의 노예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물질을 관리하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욕심이 인생을 망치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생명과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생각해보십시오. 솔로몬 왕보다 모든 낙을 마음껏 누려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뭐라고 고백했는가?

(2:25)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것을 가져보았으나 만족하지 못하였고 결국은 세상 낙으로 인하여, 타락과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하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그것이 인생을 망칩니다.

 

그리고

2. 문제의 원인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외부조건에서 찾았습니다.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남편을 잘못 만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남편을 5명이나 갈아치웠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6번째 남자와도 곧 헤어질 것입니다. 진짜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그녀의 문제의 원인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문제를 피해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구하는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16)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여인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오늘 처음 만난 이 낯선 사람이 나에 관해 이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말씀은 너의 문제의 원인이 외부의 어떤 조건이나,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에게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환경조건을 바꾸어도, 혹은 남편을 아무리 많이 바꾸어도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환경 조건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욕망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유가 느는 것에 비해 욕망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뭐든지 2배를 가지게 되면, 욕망은 4배로 커지게 됩니다. 3배를 가지면, 욕망은 9배로 커집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저 정도 가지면, 욕심을 안 부릴 것 같은데더 욕심을 부리잖아요.

그러므로 환경, 여건이 좋아진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환경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마음, 자신의 내면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몰랐습니다. 자신의 욕심이 문제의 원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성도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욕심을 줄여야 합니다. 욕심을 줄이면 행복지수가 올라갑니다. 욕심이 반으로 줄면, 행복지수는 2배로 높아지고, 욕심이 반의반으로 줄면, 행복지수는 4배로 높아집니다.

가령,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20평짜리 아파트도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40평짜리 아파트도 불만인 것입니다.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다.’(행복=소유/욕망)

 

경제학자 새뮤엘슨이란 사람은 어려운 경제이론은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새뮤엘슨은 행복에 대해서 이런 등식을 얘기했습니다.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다.’ (행복=소유/욕망)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것에 반해, 재물은 유한하기 때문에 불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한한 욕망이 분모의 자리에 있게 되면,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없는 사람, 욕망을 제로로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게 다 감사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인생으로 살면 다 감사지요. 이런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여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의 노랫말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결국 탐욕이나 욕심은 비교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 나 스스로가 아닌, ‘남보다 더'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못사는 것을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사는 것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행복할까요? 자신이 못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욱 높습니다. 선진국이 될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도바울의 생활철학이 바로 이거 아닌가.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딤전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문제의 원인은 외부 조건 때문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어떻게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3.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아 방황한 여인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장동건 같은, 멋있는 남자가 행복을 줄 것 같아서 멋진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곧 시들해졌습니다. 그 다음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해질까 해서,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다음엔 권세 있는 남자, 그 다음엔 이런 남자, 저런 남자를 전전했지만, 욕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섯 남자를 바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여인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이 공허한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보세요.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깊고 깊은 심연(深淵)과 같아서, 이 세상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오직 영적인 것으로만 채워집니다. 다시 말해 구원자, 예수로만 채워지는 것입니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든 하나의 공백이 있는데, 이 공백은 온 우주라도 채울 수 없다. 이 욕망의 구덩이는 오직 예수로만 채워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4:13)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세기의 탕자로 타락과 방탕을 일삼다가 회개하고 돌아온 성 어거스틴고백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는 참 평안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그렇게 유리방황했습니다. 그리도 목말라 하며, 살았습니다.

그랬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속사정까지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1:1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수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과 영혼의 고속도로가 펑 뚫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이런 경험을 했는가? 여러분에게도 이런 느낌, 이런 경험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한 가지, 이 여인에게 있어서 놀라운 현상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이 되고 전도의 재료가 된 것입니다. 이제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예수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여인은 마을로 달려가, 동네 사람들에게 그 동안 자기가 행한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마을 사람들은 방탕한 삶을 살던 여인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수가 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여인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집을 몇 번 간 여자에요? 그런 여인이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아주 확신에 차고 당당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전도를 듣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이런 열매가 맺힙니다. 여러분을 통해서도 이런 전도의 열매가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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