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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 설교일2017-02-19
  • 성경본문사도행전 3장 1-10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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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행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행 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 3: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행 3: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의 역사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120명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불덩어리였습니다. 그들은 뛰쳐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외쳤습니다. 어찌나 담대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하루 만에 믿는 자가 3,000명이나 더 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고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면서 친밀한 교제와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초대교회에 진짜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가 사도들의 의해서 고침 받고 일어선 것입니다. 온통 백성들의 시선이 이 사건에 쏠렸습니다. 사도들에 의한 첫 번째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이런 표적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강력한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앞장을 섰습니다.

1. 사도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 세 번씩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초대교인들과 사도들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기도가 저들의 일상생활의 제1순위였습니다. 이 같은 기사와 표적은 이런 기도의 결과입니다. 기도 분량이 차면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본래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기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초대교인들도 하루에 3번씩 기도한 것입니다. 유대 시간으로는 제3, 6, 9시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아침기도, 12시에 낮기도, 그리고 오후 3시에 저녁기도를 했습니다.

본문에 베드로와 요한은 제9시 즉 오후3시 기도를 위해 성전에 올라가던 길이었습니다. 이런 기도생활은 저들의 마음과 생각이 온통 예수로 꽉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충만이요,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 가능합니다.

가령, 여러분은 옛날에 연애 할 때 하루에 몇 번이나 애인 생각을 했는가? 하루에 몇 번 전화 했는가? 나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 애인만 못한가? 애인 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루에 3번 이상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려면 우선, 기도시간을 정하십시오. 우리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도 시간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기도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아침 시간이든, 낮 시간이든, 밤 시간이든 기도시간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그 시간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다니엘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어려운 환경이었고 악조건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들키면 사자굴 속에 던져질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시간을 지켰습니다. 기도를 멈추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높여주신 줄 믿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위급한 문제를 가지고 결재를 받으러 온 장관이 있었는데, 비서가 말하기를 장관님, 기다리십시오. 각하께서는 지금 높으신 분께 결재를 받는 중이십니다.”

여러분은 어떤가? 왜 기도를 못하는가? 바쁘고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고요? 그건 핑계요, 기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기도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세요. 놀라운 은혜와 변화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어디서 기도할 것인가, 장소도 중요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해서 어디로 갔는가?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하나님은 우리를 성전에서, 교회에서, 예배당에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집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기도, 깊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애인을 만날 때 아무데서나 만나지 않습니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데, 장애를 받지 않는 은밀한 곳을 선택합니다. 우리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한 성전에서 혹은 은밀한 골방에서 여러분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도들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성전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 같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능력이 나갈 수 있었겠는가? 기도는 곧 능력입니다.

6.25 전쟁 중 아군 1개 소대가 포로가 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통신도 두절되고 누군가가 이 사실을 지휘 본부에 알려야 하는데, 알릴 길이 없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 죽음을 각오 하고 적진을 통과해야 합니다. 소대장이 그럴 병사가 있는가, 물었습니다. 이때 한 병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대장님, 5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5분 후에 제가 가겠습니다.” 그 병사는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어머님의 기도시간을 알고 있었고 그 기도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병사가 임무수행을 완수함으로써 1개 소대원의 고귀한 생명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기도 응답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으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교회는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되어진 구별된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말씀하셨습니다(21:13). 성전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에게, 소년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2:49)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우리도 사도들처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합시다.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공예배 때 조금 일찍 와서 기도하십시오. 되도록 성전에서 기도하십시오. 가능하다면 집에 기도 골방을 만드십시오. 기도방석도 만드십시오. 이것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 성령 충만의 비결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는데,

2. 성전 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을 찾았고 앉은뱅이 걸인도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달랐습니다. 한쪽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였고 한쪽은 구걸해서, 돈 몇 푼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교회에 왔습니다. 목적과 동기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나기를 위해 왔는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는가? 우리 가운데는 동전 몇 닢을 얻기 위해 성전 뜰만 밟고 가는 사람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이런 앉은뱅이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 걸인의 운명이 인간의 운명과 비슷합니다. 인간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이 죄 때문에 사망과 저주와 질병 가운데 있으며, 마귀의 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답게 살수 없고 행복 할 수 없습니다. 이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영과 육이 마귀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여기 앉은뱅이가 바로 그런 신세였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스스로 걸을 수도 없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남의 등에 엎여서 사는 신세입니다. 내가 없어요. 자기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과 자유를 잃어버린 자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운명이 꼭 이렇습니다. 타락하여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구걸하는 거지 인생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15장에 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구걸하지 않아도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등지고 나가서 거지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거지가 됐습니다. 그래서 구걸을 하며 연명을 했습니다. 제 부모에게 구하지 않고 남에게 구걸하는 자식은 거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구걸하며 사는 거지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구걸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하는 자녀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앉은뱅이를 보는 하나님아버지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이 앉은뱅이는 미래가 없습니다. 구원의 여망도 없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오직 절망뿐입니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에게 구원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3. 베드로가 그의 안에 살아 계신 예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앉은뱅이 거지는 다만 동냥 몇 푼을 구걸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은 줄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베드로에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안에도 예수님이 계신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같이 사는 것입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이란 단순히 성경을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관념도, 종교도, 윤리, 도덕도 아닙니다. 믿음은 영적 실재입니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종교 생활입니다. 죽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주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여러분 안에 이 예수님이 계신가? 당신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은 당신 안에 있는가? 믿음이란 가지가 포도나무에 항상 붙어 있듯이 예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하는 믿음이요, 살리는 믿음입니다. 매일 순간, 순간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 아멘하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이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살면 부부가 서로 닮듯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 주 사귀어 살면 주 닮으리니 널 보는 이 마다 주 생각 하리

여러분이 예수 안에 거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이 알까요? 여러분은 주님을 닮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마다 주님 생각을 할까요? (옆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저를 보면 예수님 생각이 날까요?”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신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자기 자랑? , , 부동산, 지식, 명예? 사도바울은 예수님 만나고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다이몬드를 발견한 사람은 조약돌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다. 의의 태양빛 아래서는 호롱불은 힘을 잃습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신 것입니다. 우리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가?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가?

어느 집에서 부부 싸움을 거칠게 하는 데 한 전도자가 찾아와서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신가요?” 하는 말에 충격을 받고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내게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내게 돈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지식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어요.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부활이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서도 생명이 나가고 능력이 나갑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돈은 세상이 더 많습니다. 좋은 건물도 세상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는 세상에는 없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주는 것과 돈을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축복인가? 돈은 한 끼의 양식을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 암송하시지요.

(4:13)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돈은 잠깐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예수님을 주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주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예수를 주지 못하는가?

베드로가 믿는 예수님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다른가? 베드로가 모신 예수님과 우리가 모신 예수님이 다른가?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습니다. 다만 믿음 차이일 뿐입니다. 성령 충만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4. 앉은뱅이였던 자는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여기 뛰었다는 것은 완전하게 치료되었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근본적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베드로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질병의 포로에서 자유를, 물질의 포로에서 자유를, 죄의 종에서 용서를, 마귀의 종에서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갈 수 있고 자립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전 주변에만 맴 돌던 그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의 입술에서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이었는데, 이제야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요? 혹시 앉은뱅이처럼 살고 있는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뛰어 서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주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치유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찬양하는 가운데 심신의 치유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영혼의찬양 23장입니다(‘나의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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