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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사람, 나다나엘
  • 설교일2017-03-12
  • 성경본문요한복음 1:45-51
  • 설교자신만교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요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예수님의 12제자 시리즈 말씀 가운데, 세 번째 시간으로 나다나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다나엘12제자인가? 아니지요. 그런데 12제자입니다. 무슨 말인가? ‘나다나엘이 바로 바돌로매입니다.

나다나엘’ = ‘바돌로매

 

요한복음에는 나다나엘로 나오고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나다나엘이라고 하지 않고 바돌로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바돌로매라는 이름은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는 히브리말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를 부를 때도 바요나 시몬아!”라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그런 뜻입니다.

바돌로매, 즉 나다나엘은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되었나요? 나다나엘을 누가 전도했지요? 그의 친구 빌립이 전도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빌립이 너무 기뻐서 자기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가서 전도했습니다.

처음엔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메시아가 나겠느냐, 심한 편견을 가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친구 빌립이 한번 와보라!”고 강권함으로써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가?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는가? 여러분도 이런 제자가 되는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1.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생이 놀랍게 변화됐습니다.

톰 해리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I am OK, You are OK’!" 우리말로 나도 긍정, 너도 긍정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바꾸기가 참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바꾼다거나,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톰 해리슨은 이 책에서 몇 가지 이유가 있으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몇 가지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는 아주 어려운 고통을 당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과 의지를 다 버릴 정도의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사람은 그것을 통하여 변화를 가져올 큰 결단을 하게 됩니다. 내 생각이나, 경험으로 볼 때에 이제는 다 끝났다싶을 때, 비로소 생의 새로운 궤도 수정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고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합니다.

성경에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돼서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요, 요셉이요, 다니엘 같은 사람입니다.

또한 톰 해리슨유레카 스테이지’(eureka stage)에서 사람이 바꾸어진다고 했습니다. 유레카’(Eureka)라는 말은 헬라어로 찾았다’,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영어로 하면 ‘I have found it’입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을 때, 엄청난 깨달음이 있을 때, 소위, 득도를 했을 때 사람들이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레카’(Eureka) =‘I have found it’=‘심봤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 뭐라고 소리 지르는가? 심봤다!”라고 합니다. ‘유레카가 바로 그 말입니다. 엄청난 것을 찾았거나, 발견했을 때 지르는 소리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생이 놀랍게 변화됐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뭐라고 소리쳤을까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나다나엘이 변화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이런 은혜가,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옛날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공중목욕탕에서 깊은 사색을 하다가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너무 기뻐서 옷도 입지 않은 채 집으로 뛰어가면서 유레카”, “유레카를 외쳤다고 합니다. 이게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랍니다.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았을 때, 내가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을 때,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을 때, “유레카” “, 이것이다감격하며, 사람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계시구나!”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하게 쓰시기를 원하시는 구나!”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게 된 동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제자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바로 그런 경험을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는 그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를 아시는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때 나다나엘은 엄청난 사랑을 깨닫게 됐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하나님이 부르셔서 쓰시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부자였지만 손가락질을 받고 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유레카!” 다섯 남편을 바꾸며 살았어도 행복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유레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유레카!” 놀라운 변화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3:7)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나다나엘 역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생이 놀랍게 변화됐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인가?

2.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화과나무가 일종의 개인적인 휴식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약 4m의 높이로 자라고 가지는 사방으로 7m를 덮는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그늘 휴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집들이 방 하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하게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나다나엘 역시 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을 했을 것입니다. 이 무화과나무 그늘은 나다나엘에게 있어서 경건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였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도 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 예언의 말씀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빌립과 메시아 예언에 대하여 토론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뒤에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의 이 말은 나다나엘이 메시아를 찾기 위하여 율법과 선지서를 묵상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을 하다가도 오전 9, 12, 3시에는 딱 멈추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방해받지 않는 은밀한 곳이 필요합니다. 나다나엘에겐 무화과나무 그늘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무화과나무 그늘이 필요합니다.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장소를 무화과나무 그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의 골방을 무화과나무 그늘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거기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따라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삭은 한밤중에 들로 나가서 하나님과 교제를 했고 엘리야는 동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다나엘 역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모습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나다나엘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더욱 힘써야 될 줄 믿습니다. 새벽시간이든, 아침시간이든, 낮 시간이든, 말씀 묵상에 힘쓰십시오. 영적인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나다나엘과 같이,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서 말씀묵상과 기도에 힘쓰다가 예수님 만나는 은혜와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3. 나다나엘은 간사한 것이 없는 순전한 사람입니다.

나다나엘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심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나사렛출신이라고 하니까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강권으로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자마자 하신 말씀입니다.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것은 엄청난 칭찬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나사렛출신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나다나엘을 오히려 칭찬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부터 이미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너무나 놀랬습니다. 자신을 이미 알고 계셨고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말씀 묵상하는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칭찬까지 들었습니다.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간사라는 말은 물고기를 낚을 때, 사용하는 미끼를 뜻하는 말입니다. 낚시하는 사람은 미끼를 이용해서 고기를 낚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온갖 미끼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게 간사한 것입니다. 약고 약삭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에겐 이런 간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순수하고 순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다나엘에 대한 기록이 이 본문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성품이 조용한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러면서도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다보니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았던 제자가 바로 나다나엘, 바돌로매였습니다.

우리도 나다나엘처럼 간사함이 없는 순수한 사람, 순전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순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진실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르면 그것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언제나 한결같고 변함이 없는, 정말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다나엘처럼 간사한 것이 없는, 순전한 사람,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나다나엘은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나사렛 사람, 요셉의 아들인 예수님이다고 말하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그런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와서 보라.”고 강권해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이야말로 간사한 것이 없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때 나다나엘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그때 나다나엘이 뭐라고 말했을까요? “유레카”, “, 이분이다”, “심봤다!” 순간 나다나엘의 눈을 가로막고 있던 선입견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1:49)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선생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버금가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하시지요?

 

신앙생활에 있어서 입술로의 고백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신앙고백에 따라 구원이 좌우됩니다. 또 이 말씀을 보십시오.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술로 고백하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진실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거짓된 고백, 잘못된 고백도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 돼야 합니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입술만의 고백은 헛된 고백입니다. 나다나엘의 이 고백이야말로 진실 된 고백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을 들으시고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말한 것 때문에 네가 믿느냐? 너는 이보다 더 큰일도 볼 것이다.” 하시면서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1:51)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이 말씀, 어디서 보던 광경이지요? 그렇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꾸었던 꿈을 암시합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무화과나무 밑에서 나다나엘이 읽었던 구약성경이 아마도 창세기 28, 야곱이 벧엘에서 본 환상처럼, 천사들이 하늘의 사닥다리로 오르락내리락 했던 말씀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무슨 의미일까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연결을 말합니다. 사닥다리는 연결, 중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내가 너의 구원의 사닥다리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구언의 사닥다리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의 사닥다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사닥다리가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시고 계십니다. 바로 사순절입니다. 이 사순절에 주님과 동행하기를 권면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진실한 청년, 정직한 사람,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업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명성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한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순수한 인격과 성품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제자입니다. 우리도 순전한 사람, 나다나엘, 간사함이 없던 제자, 바돌로매를 본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의찬양 40장입니다(‘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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