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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바꾸라!
  • 설교일2018-02-11
  • 성경본문고린도후서 5장 17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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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자존심, 또는 자존감이란 말 들어보셨지요?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비슷한 거 같은데, 아주 다릅니다.

 

자존심(自尊心)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남이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리면,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이 화를 냅니다.

 

그런 것에 비해,

자존감(自尊感)은 자기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존심'은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받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타인과 상관없이 나 스스로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나로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남에게서 찾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고 원망할 일도 감사로 돌립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감사할 일도 원망합니다.
자존심자존감의 차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입니다. 여러분의 경우, 자존심이 강한가요, 자존감이 높은 가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열등감(劣等感)이 있고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있습니다. 둘이 비슷한 거 같지만 역시 차이가 있습니다.

 

열등감(劣等感)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못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약점을 보는 감정입니다. 이런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가 칭찬을 해도 비웃는 것처럼 느낍니다.

 

자격지심(自激之心)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나오는 마음입니다.

이 자격지심은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노력해서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열등감이 있고 자격지심이 있는 집사, 권사의 교회생활은 어떨까요? 불평, 불만이 있고 다툼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존감(自尊感)이 높은 성도가 돼야 합니다. 스스로를 존중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자존감이 높을 수 있는가? 우리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입니다. 우주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걸작품입니다. 이런 성도가 어찌 열등감을 가질 수 있는가.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교인은 절대로 시험 들거나,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자화상(自畵像)이란 무엇인가?

자화상(自畵像)이란 마음속에 그린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 모습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자화상(自畵像)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Self-image’라고 합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의 자화상은 어떨까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의 자화상은 어떨까요?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의 자화상은 어떨까요?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강한 성도의 자화상은 어떨까요?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사람이 어떤 자화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수 있고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고,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자화상대로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자화상은 건물 질 때, 설계도와 같습니다. 설계도대로 건물이 지어집니다.

우리가 잘되려면 자기 마음속에 자화상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자화상을 바꿀 수가 있을까요?

 

1. 자화상을 바꾸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화상은 생각을 마음속에 심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동안의 내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화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화상을 바꾸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

새 번역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생각에 따라서 사람됨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풍채가 대인 같아도 생각이 소인이면, 그 사람은 소인이고, 아무리 소인이라도 대인처럼 생각하면, 그 사람은 대인이 됩니다.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어떤 생각을 자기 마음속에 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오늘의 생각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순간순간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야근을 하다가 큰 냉동실에 들어갔는데, 그만 실수로 냉동실 문이 잠겨 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이 냉동실은 밖에서만 열도록 되어 있대요. 그래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와서 구해주지 않으면, 냉동실 안에서 동태가 되어, 얼어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밤이라 아무도 사람이 오질 않습니다. 이 사람은 그만 절망 했습니다. “, 나는 여기서 이대로 죽는구나,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내 몸은 얼어붙겠지. , 몸이 점점 얼어오고 있구나. 나는 곧 죽는다.” 이런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침이 되어 다른 사람이 와서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이 사람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람이 얼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얼어 죽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냉동실 전기가 꺼져 있어서, 바깥의 기온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죽은 것입니다. 냉동실 안에 갇힘으로써, 지레 겁을 먹고 죽은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심느냐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고 더 나가 생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을 하기를 바랍니다.

 

성경 민수기 13, 14장에 보면 12명의 정탐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1년 남짓 광야를 행진하여 가네스 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곧 가나안 땅 문턱에 와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그런데, 감격은커녕 이를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허락하셨고 모세는 백성을 대표해서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먼저 10명의 정탐꾼들이 백성들 앞에서 보고합니다.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한 마디로,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이요, 거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어떻게 거인들의 땅을 차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뚜기 자화상입니다. 아주 부정적인 자화상입니다. 상대는 커 보이고 자기는 메뚜기 같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까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애굽에서의 노예의 자화상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자화상을 갖고 있지 않는가?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이들에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실패하는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육중한 코끼리가 뒷다리에 5센티 밖에 안 되는 족쇄를 찬 채 꼼짝 못합니다. 그 족쇄는 2미터밖에 안 되는 사슬에 묶여 조그만 말뚝에 박혀 있습니다. 코끼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말뚝을 빼낼 수 있고 족쇄도 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족쇄에 묶여 삽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이 족쇄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때는 힘이 없어서 풀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라서 힘이 세졌고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데도, 꼼짝없이 묶여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자화상에 묶여 있는 사람이 꼭 이와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모습이 이 모습은 아닌지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코끼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부정적인 자화상에 갇혀있습니다. 자화상을 바꾸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바꾸면, 신앙생활도 훨씬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공예배도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도,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되는가?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자화상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왕, 사자가 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굉장히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자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큰 소리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 더 커졌습니다. “어떤 놈이 동물의 왕인 나보다 더 큰 소리를 가지고 있지?” 사자는 겁을 먹었습니다.

겁을 먹은 사자는 이렇게 중얼댔습니다.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저 동물은 아마 나보다 몸이 10배쯤 클 거야. 그 놈의 발톱은 저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만 하겠지. 이빨은 저기 저 바나나보다도 더 클 거구. 나를 만나면 이놈 사자야, 내가 너를 혼내 주리라하면서 다려들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자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소리는 다름 아닌, 개구리 우는 소리였습니다. 개구리는 몸집은 작아도 우는 소리는 아주 크거든요.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개구리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하여, 산천이 떠나갈 것처럼 울어 대지 않습니까?

무슨 얘기인가? 아무리 사자로 태어났어도 생각을 잘못하면, 사자라도 개구리 앞에서 겁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 자녀 교육문제, 사업문제, 장래 문제 등이 끊임없이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듭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에게 희망보다는 실망을, 용기보다는 낙심을 줍니다. 이런 환경을 바라보면 가슴이 철렁 철렁합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럴 때,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적극적 자화상이 생기고 부정적 자화상이 생깁니다.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밝고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자화상을 바꿀 수 있는가?

2. 자화상을 바꾸려면 언어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자화상을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게 되고, 긍정적인 말을 하다 보면 긍정적인 자화상을 갖게 됩니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잘못해서 함정에 걸려들게 되고 빚보증을 섰다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입니다.

(6: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그래서 성경은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렸다고 말씀합니다.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사람이 말 한 마디 잘해서, 형통하게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혀를 잘못 쓰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습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안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혀의 권세입니다.

유명한 점쟁이가 한 여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일주일만 있으면 죽을 것이오.” 가짜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여자는 진짜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 유서를 써놓고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있다가 일주일도 안 되서 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는 말이 맞습니다.

어느 대뇌학자가 말하기를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뇌세포에 각인되어 생각을 형성하게 되고 그 생각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면, 아이가 금방 잠이 들고, 오줌을 누일 때도 ~ ~” 하다 보면 금방 오줌을 누게 됩니다. 말은 생각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부모는 파괴적인 말이 아닌,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서 좋은 자화상을 갖게 하십시오. 아내나 남편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서 좋은 자화상을 갖게 하십시오.

 

 

미국의 유명한 조엘 오스틴 목사는 잘되는 나자화상을 가지라고 하면서, 매일매일, 더 좋은 내가 되는 7가지의 키를 소개합니다. 나는 잘 될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나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믿음으로 산다.” 이런 말을 반복하면 긍정적인 자화상을 갖게 되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자화상을 바꾸려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실패하고 불행한 사람도 예수 믿으면 새로운 자화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놋쇠 오강을 용광로에 넣었다가 주발대접을 만든 것입니다. 옛 사람의 모습은 없어지고 완전히 새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자화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 믿고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는 것은,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되는 것과 같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과 같습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세무서장으로서 높은 지위와 많은 물질은 가졌지만,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셨고 거기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삭개오는 새로운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질의 노예로 살던 그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삭개오의 고백입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 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이렇게 자화상이 바꾸어집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과거가 아주 부끄러운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수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자화상이 바뀌었습니다. 자존감이 회복됐습니다. 그녀는 즉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서 외쳤습니다.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지금까지 죄 가운데서 살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술 취하고 방탕하며 살았는데, 이제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드리고 거룩한 자화상을 가지게 됐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사람이 전도합니다.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예수님을 만나면 이렇게 자화상이 바뀝니다.

당신의 자화상을 바꾸십시오. “Change Your Self-Image”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십시오.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자화상은 마치 배의 키와 같습니다. 배가 항해할 때, 키가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인생 항해에도 마음속에 자화상이 방향과 목표를 갖게 합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자화상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자화상이 바뀐 것처럼, 그래서 전도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 이 시간 저도 만나주소서. 제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주소서.”

영혼의찬양 128(‘우물가의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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