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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수의 분신이다!
  • 설교일2018-03-18
  • 성경본문사도행전 9장 1-5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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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박해자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러 가다가 기적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음으로, 광신적인 박해자가 변하여, 열정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울은 맹목적인 교회 박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위 행동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비겁한 지성인이 아니라, 용기 있는 지식인이었지요. 사울은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그런 지성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목숨 걸고 행동했습니다. 그가 초대교회를 어떻게 박해했는가?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구약의 율법이나 조상들의 유전에 충실한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다른 유대인처럼, 정치적인 메시아, 경제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울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굉장히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쟁이들, 진짜 밥맛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옛날에 이렇게 교회가 싫고 예수가 싫었던 사람도 있지요? 누가 그런 분인가요? 감사해야 합니다.

사울은 예수쟁이들을 잡아 죽이고, 교회를 없애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고, 믿는 자들을 더 많이 잡아 가두려고 혈안이 돼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박해자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을 찾아오셔서 만난 것입니다. 인격적인 만났습니다. 백주 대낮에, 하늘로써 강한 빛이 비추었습니다.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뭐라고요?

(9: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것을 소위 부르심, calling, 소명이라고 합니다. 이때 박해자 사울이 놀래 자빠지면서 물었습니다.

(9:5) 주여 누구시니이까

Who are you, Lord?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물을 수밖에요.

그때 하늘에서 주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9:5)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줄만 알았던 예수가 살아 계신 거예요. 그리고 사울보고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내가 네게 무엇을 잘 못했느냐,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죽었는데, 네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졌는데,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사울이 거기서 깨진 것입니다. 편견이 깨지고 고정관념이 깨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맞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맞구나. 그리스도이신 것이 맞구나!” 그 예수를 믿고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울이 놀란 것이 있습니다. 사울은 지금까지 믿는 자들을 잡아가두고 죽이고 초대교회를 파괴하고 박해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핍박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 있는가? 여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체(同一體)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교회를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입니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러니까 교회를 박해하고 믿는 사람을 투옥시킨 것이 예수님을 박해한 것과 똑같습니다. 사울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말을 듣고 놀라 자빠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 이 사실을 모르는 분이 계셨다면, 오늘 알고 놀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체로구나!’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요, 교회에 잘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잘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분이 있는가? 여러분이 혼자 고난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함께 고난을 당하시고 계시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분신인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특별한 기관이요, 유일한 기관입니다.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기 하나님이 당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는 말은 어마어마한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지요?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손수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드셨습니다(2:7). 그래서 사람이 만물보다 귀한 것입니다. 만드는 과정이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셨다고요? “교회여, 세워져라!” 명령해서 세우셨나요? 아닙니다. 손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세우셨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요?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피라면 누구의 피인가? 성자 예수님의 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운 것입니다그래서 교회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이유도 똑같습니다. 우리를 무엇으로 사셨는가? 피 값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것입니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니,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가치 있게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체요, 그리스도의 분신이라면, 그 교회를 우리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2.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늘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지요? 간단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요? 교회는 예수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교회를,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셨지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목숨 바쳐 사랑하셨습니다.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이렇게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되, 자신을 주기까지 사랑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자기를 주는가?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으셨어요. 예수가 죽고 우리가 산 것입니다. 러니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요. 그래도 예수를 살아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받으라고 했는가?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복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의 몸 된 교회, 피 흘려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이 곧 교회 사랑입니다. (다같이) 예수사랑 교회사랑!’, ‘교회사랑 예수사랑!’ 할렐루야! 우리 모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늘 사랑합시다. 아멘!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욕하거나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늘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누가 내 자녀를 사랑하면 기쁩니다. 그러나 누가 내 자식을 욕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찢어집니다.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 예수님이 아파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그리스도의 분신인 교회를 늘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는가? 누가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인가?

3. 우리는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합니다.

사도바울은 모를 때는 교회를 박해했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교회를 사랑할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사도바울이 1, 2, 3차 세계 선교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을 양육하는 일을 위해, 어떤 수고를 하였고 어떤 박해를 당하고 얼마나 투옥되고 희생하였는가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너무도 잘 압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전도와 교회를 위해서 그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아니했고 피하지도 아니 했습니다. 오히려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쉬운 성경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1:24)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과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더 많이 수고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고난을 더 많이 받으려 했습니다. 왜요? 그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기뻐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교회를 위한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어떤 고난까지 당하였음을 고백하였는가? 고후 11:23-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고후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며 여러 번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또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헤맨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들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신자들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또 수고하고 애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여러 번이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수없이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할 수가 있을까.

여러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어떤 고난을 당해보셨는가? 아니 지금 당하고 있는가? 또 당할 각오가 돼있는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분신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마지막 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여러분은 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는가? 교회를 생각하며 염려가 된 적이 있는가? ‘왜 교회의 빈자리가 많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전도를 안 해서 그렇지.’

진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수요예배에 와보고 안 되겠다, 나라도 자리를 지켜야 되겠구나.” 새벽기도나 금요기도회에 와보고 교회가 이렇게 쓸쓸하면 안 돼지. 나라도 자리를 지켜야지.”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하나님의 나라 일을 못하니, 힘들어도 물질봉사를 해야지 이렇게 교회를 염려하는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기에,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고난을 당할 뿐만이 아니라, 시도로서, 마땅한 누릴 권리조차도 포기했습니다. 고전 9:4-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고전 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고전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전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전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과 베드로처럼 우리에게도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습니까? 어찌 나와 바나바에게만 일하지 않고 먹을 권리가 없겠습니까? 자기 비용으로 군대생활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먹지 않을 사람이 누굽니까? 양을 기르는 사람치고 그 젖을 먹지 않을 사람이 누굽니까? 모세의 율법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소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더욱 큰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는 뜻에서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마땅한 권리를 왜 주장하거나 쓰지 않았을까요?

(고전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복음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될까 봐, 모든 것을 참아 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 마땅한 권리를 다 쓰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주님 앞에 가서 상 받으려고요.

바울이 마땅한 권리를 다 쓰지 않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도움을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본받게 하려고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바울입니다.

오늘 날 목회자나 중직자들이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고난당하고 희생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권리 주장을 해서 문제인 교회가 많습니다.

 

저는 나는 은퇴를 꿈꾼다!’의 글을 써서 성결신문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도 밝혔듯이 은퇴할 때,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명령받은 것을 다 수행하고 난 이 무슨 요구를 하겠는가. 저는 다만 믿게 한 사역자, 다시 말해서, ‘servant’, ‘하인’, ‘’, ‘머슴’ ‘일꾼에 불과합니다. 복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했어도 그것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결코 저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본을 보여주신 근본정신은 비움이요, 포기요, 내려놓음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리까지 내려놓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교회에 장애가 될까봐, 당연한 권리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세습의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봐야합니다. 저도 자녀 목회자가 있지만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교회사이즈가 좀 크다고 해서 그리도 내려놓기가 힘든 건지 안타깝습니다.
은퇴할 때 주택문제가 늘 쟁점이 됩니다. 평생 사택에서 사시던 목회자의 문제입니다. 저는 주거문제에 대해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주택 적금을 붓다가, 다행히 공공 임대주택이 당첨 돼서 올 가을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은퇴비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저는 퇴직금 정산이 저의 소신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본받고 사도바울을 본받고 싶습니다. 저는 후임자에게 부담 없는 교회를 넘겨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추진하는 일 중에 하나가 채무 제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빚이 없는 교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교회가 빚이 많은 것은 아니고요, 이제 1억 정도 될 것입니다.

 

비전헌금 = 채무 제로교회

 

저는 이 일을 위해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 보너스 2달 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500이 넘는 액수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뜻을 이해하고 비전헌금에 참여해주어 감사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고 빚이 없는 분들은 채무 제로 교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주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교회가 살고 여러분이 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늘 사랑해야 합니다.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그 날에 갚아주실 것입니다.

영혼의찬양 117장입니다(‘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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