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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와 같은 참 스승
  • 설교일2018-05-20
  • 성경본문고린도전서 4장 14-16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고전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스승이란 가르치는 일을 맡은 교사, 혹은 선생님을 높이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교육(敎育)이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도 가르치는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복음전파와 치유 봉사, 그리고 가르치는 사역이 예수님의 3대 사역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도 가르침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제자훈련도 열심히 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가르침 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스승 중의 스승이십니다.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보고 스승이라고 했고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을 가리켜 선생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세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우리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은 분들, 다시 말해 교사 혹은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우리 목회자들, 교회학교 교사들, 셀리더들입니다. 목회자 여러분, 교회학교 교사 여러분, 셀리더 여러분, 아무쪼록 좋은 교사, 좋은 스승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좋은 스승은 누구인가?

 

1. 스승은 말씀을 잘 가르치고, 또 행함으로써 본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좋은 스승이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잘 가르쳐주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다가 인간으로 성육신해 오신 분입니다(1:1).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파하러 오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여, 3년 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중요한 분부를 하셨습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을 가르쳐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가? 말씀은 인생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지도와 같습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지도는 가야 할 길을 보여 줍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가 나침반이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결코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없습니다.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결국, 표류하다가 파선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습니다. 거친 바다와 같은 세상을 사는 인생에 있어서, 나침반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꼭 필요합니다. 말씀만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여러분,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항로가 안전하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가는 길을 밝히 비춰줄 것입니다. 말씀이 무엇인가?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가다가, 자동차의 라이트가 나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냥 서있을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완전히 소경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적당히 운행을 했다가는 대형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길에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발에 등이 되고, 가는 길에 빛이 되어 인도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자동차의 길 안내 시스템인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모르는 길도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면 걱정 없습니다. 말씀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감으로써,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유모 중에 남자는 인생 살면서 세 여자의 말만 잘 들으면 길 잃을 일이 없다고 합니다. 세 여자가 누구지요?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말씀, 어려움을 함께한 조강지처의 말, 그리고 내비양의 말이랍니다.

 

 

또 한 가지 말씀은 인생의 관제탑과 같습니다. 여러분, 관제탑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공항에서 항공기의 이착륙 허가를 하고 비행장 진입방향, 이륙방향지시 등의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비행기는 관제탑의 명령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관제탑의 지시를 어기게 되면, 비행장은 끔직한 사고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인생의 관제탑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에 따르십시오. 그러면 형통한 복을 받을 것입니다.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씀의 관제탑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어겨서, 사고를 당했던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아담이 최초로 하나님의 관제탑 지시를 어긴 사람입니다. ‘먹으면 죽으리라는 선악과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후손인 전 인류를 사망에 구렁텅이에 처넣는 사고가 났습니다.

삼손 역시 하나님의 관제탑의 통제를 자주 벗어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두 눈을 잃고, 연자방아를 돌리다가 죽음에 이르는 사고를 초래했습니다. 사울 왕은 처음엔 순종하다가, 중도에 관제탑이신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의 관제탑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안전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말씀 사역을 맡은 우리 목회자들, 교사들, 리더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합니다. 어떻게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지요?

우리 교사들은 말씀을 잘 가르치되, 먼저 행함으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말씀교육은 지식교육과는 다른 것이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행함으로 먼저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유일한 교과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는 것보다,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본을 보이지 않고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없습니다.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시며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전도하실 때도 언제나 나를 따르라고 하시며 전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사랑과 겸손,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씀만 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나를 따르라”,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영향력을 끼치고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고전 4:16)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보고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지식교육만 가지고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말로만 하는 교육을 가지고는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말 다르고 행동 다른, 게 교육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모델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도 안 변했는데, 어찌 남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행함으로 본을 보여주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참 스승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우리 말씀사역을 하는 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리의 영, 성령만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불빛이 없으면 책을 볼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 성령만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래서 우리 설교자나 교사나 리더는 반드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말씀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말씀 사역에 생명력이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사역을 하는 교사여러분, 셀리더 여러분, 목회자 여러분, 성령이 역사해야 말씀이 살아 역사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셀모임에서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분반공부는 열매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해서, 말씀 사역에 승리하는 교사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 여러분, 리더 여러분, 목회자 여러분, 성령 충만해서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2. 스승 중에는 아비와 같은 참 스승이 있습니다.

교사라고 다 똑같은 교사가 아니요, 스승이라고 똑같은 스승이 아닙니다. 스승 중에도 아비와 같은 참 스승이 있습니다. 아비와 같은 스승의 대표적인 분이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14절입니다.

(고전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스승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잘 듣거라. 세상에 선생은 많아도 애비는 하나뿐이듯이, 나는 너희 선생이 아니라, 복음으로 너희를 낳은 네 애비야, 애비!” 사도바울은 아비와 같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제자들을 뭐라고 불렀는가? 자녀, 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어떻게 불렀는가?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누가 아비와 같은 스승인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낳아서 길러야 아비 같은 스승입니다. 제자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스승입니다. 해산의 수고를 해보신 어머니들은, 자녀를 해산하는 수고를 아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혼을 출산하기 위해서도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하여 또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 교사들, 리더들, 목회자들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내게 맡겨주신 그 영혼을 위해서, 해산의 고통까지도 각오해야,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아 지극 정성으로 키우듯이, 교사들도 학생들을 위해서 그만한 수고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래서 아비와 같은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가르치느라고 얼마나 속을 태웠길 래, 진을 다 뺀 덩어리라 양분이 없으니, 개마저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비와 같은 스승입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라고 얘기 들어보았지요? 3중고의 인생, 낳자마자 부모조차도 포기해 버린 아이였습니다. 보지 못하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는 이 아이는 생후 19개월 때 중병에 걸려서 시력과 청력, 그리고 언어력까지 상실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아비 같은 스승이 나타났습니다. 나이 20세가 된 설리반이라는 간호사였습니다. 이 설리반과 삼중고를 가진 버려진 헬렌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얼굴을 씻는 것을 시작으로 머리를 빗는 것,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하는 것, 모두가 헬렌과 격투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음은 그 헬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교사와 스승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다시 낳는 아비가 되기로 작정하였던 겁니다. 드디어 이 같은 눈물겨운 설리반의 노력이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데, 20세가 된 헬렌이 하버드대학에 입학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4년 후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아, 농아로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겁니다. 그리고 전 생애를 걸쳐 맹아, 농아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망의 복음을 전해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설리반이야말로 헬렌 켈러의 아비와 같은 참 스승이었습니다. 영적 부모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사들도 해산의 수고를 함으로써 아비와 같은 스승이,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고 좋은 것을 함께 합니다.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도 잘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을 존경하고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또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되,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분들을 더욱더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그래야만 교육의 효과가 있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말씀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유대인들의 경우, 최고의 지성인을 랍비, 즉 교사로 세웁니다. 랍비는 바른 성품을 지닌 사람을 세웁니다.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랍비로 세우지 않습니다. 아주 철저합니다.

그리고 일단 교사로 세웠으면, 최고의 대접을 합니다. 물질적인 최고의 대접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최고의 존경을 표합니다. 나라의 총리도 교사들 앞에서는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이런 환경, 여건에서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교육환경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열은 대단히 높은데, 교육 풍토가 문제입니다.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교사가 체벌 좀 했다고 고발을 하지 않나, 교실에 좇아가서 교사를 욕하고 행패를 부리지를 않나요. 이런 여건에서는 참 교육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를 존경하는 풍토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안에서 교육을 담당한 분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셀리더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목회자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교회 교사들이 여러분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교사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합니다. 또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해서, 스승의 은혜도 부모의 은혜처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스승도 부모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경만 하는 마음뿐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보세요.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면 됩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커피 한잔이면 어떤가? 국밥 한 그릇이면 어떤가? 카드 한 장, 꽃 한 송이면 어떤가?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면 됩니다.

성경은 말씀 사역자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고전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전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율법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소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복음 사역자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사역자들이 신령한 것을 뿌렸기 때문에,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고전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 여러분, 셀리더 여러분, 말씀을 잘 가르치고, 또한 행함으로써 본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 교사, 보통 스승이 아니라 아비와 같은 참 스승이 되어 해산의 수고와 희생으로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고 좋은 것을 함께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영혼의찬양 123(‘우리에게 향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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