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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이유(The Reason Why I Live)
  • 설교일2018-06-17
  • 성경본문이사야 43장 1-7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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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 43: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 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남 말할 것 없고 당신은 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과연 나는 왜 사는가? ‘는 어떤 존재인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가?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 가짜 중, 소위 돌중이 시주한답시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빈집에 들어가 여인네들을 농락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목에 칼을 채우고 포박해서 포졸을 붙여 귀양지로 보냈습니다. 해가 저서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포졸은 그 돌중을 기둥에 꽁꽁 묶어 놓고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돌중이 포졸님, 포졸님, 죄송합니다.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술이나 한잔 하십시오.” 그러니까 포졸이 , 이 사람아, 돈이 어디 있어서 술을 마시나?” 그때 돌중이 포졸님, 돈이야 제 호주머니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을 갖고 귀양지에 가야 쓸데가 없으니 어서 갖다 쓰세요.”

그 말에 솔깃해진 포졸은 돌중의 돈으로 술을 실컷 마시고 곯아 떨어졌습니다. 돌중은 기회는 이때다 생각하고, 주막 아주머니를 불러서 화장실이 급하니 포승을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잠결에 포승을 풀어 주었습니다.

중은 곯아떨어진 포졸의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자기 목의 칼을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목을 옥죄이던 칼을, 술 취한 포졸의 머리에 채우고 면도칼로 포졸의 머리를 싹 깎아 중머리로 만들고는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술에 취해 자다가 아침에 깨어난 포졸은 그때까지도 술기운이 있었습니다. 그제 서야 , 중이 어디로 갔지?” 하며 돌중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 중은 여기에 있는데, 나는 어디 갔지?”

 

이 풍자적인 이야기 속에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도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고 정욕에 취하고 세상에 취해서 하나님도 잃고 나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그렇습니다.

1. 인간의 비극은 자신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됐습니다.

소위 정체성, 아이덴티티(Identity)의 문제입니다. ‘자아 정체성의 상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근본 이유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나니, 자신도 잃어버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를 잃으면, 그 순간 자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기 성을 압니까? 이름을 압니까? 생일을 압니까? 아무 것도 모릅니다. 천애의 고아가 됩니다. 아주 불쌍한 애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낳은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생년월일, 이름 석자라도 쪽지에 남겨달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리면 인간 스스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의 원인입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고아 앞에 무슨 형용사를 거창하게 붙인들 행복할까요?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에게 돈 많은 고아, 예쁜 고아, 공부 잘하는 고아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 역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간혹 아기 때, 고아가 돼서 입양 간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고국을 찾아와서, 자기를 낳아준 친부모를 찾습니다. 왜요? “나는 누구인가?”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모를 찾으면 너무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근원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를 찾지 못하게 되면, 고민 고민하다가 자살까지 하는 청년도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자아 정체성의 회복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꼭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노방전도를 할 때, 이런 복음 멘트를 선포합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뭔가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나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이것을 모르면 자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아 정체성의 상실, 그게 불행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스런 손주를 잃어버렸다고 상상해보세요. 누가 그 아이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가? 속된 말로 개밥의 도토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자신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15장에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탕자가 됐습니다. 그의 가치가 어떻게 추락했는가? 돼지와 같이, 먹고 자는 수준까지 추락했습니다.

(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타락한 모습입니다.

그랬던 둘째 아들이 어떻게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하게 됐는가? 아버지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까, 다 회복이 됐습니다.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비결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고아라는 근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간단합니다. 부모 만나면 됩니다. 고아가 부모를 만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과부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간단합니다. 신랑 예수를 만나면 됩니다. 인간은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때, 잃어버린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까 머리 깎인 포졸에게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술기운으로 그냥 돌중 행세를 하며 살아야 하는가? 안 돼지요. 정신을 차리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기 본분을 찾아야지요. 모두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행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알게 됩니다.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대단히 존귀한 자입니다.

사람은 어쩌다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혹시 부모는 계획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계획하셨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에 의해 지음 받은 아주 존귀한 자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인간은 스스로 있게 된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을 여러분이 선택했는가? 조국을 선택했는가? 여러분 중에 이 세상에 오고 싶어 온 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존재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숲 속에서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개가 발견됐습니다. 몹시 굶주려있었고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 개가 뉘 집 개냐?”고 쳐다보면서 지나갔습니다. 한 경찰관이 지나가다가 그 개를 보았더니, 목덜미에 이름표가 달려있습니다. 그 이름표를 유심히 봤더니 그 이름은 밥스라는 개인데, 그 밑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강아지는 왕궁에 속한 강아지입니다.”

경찰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즉시 강아지를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주고 약을 발라주고 잘 먹였습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국왕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얼마 전 국왕 부처가 에든버러에 휴가를 왔다가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귀가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국왕이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그 강아지는 바로 국왕의 소유였습니다. 비록 개라도 아무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소유자가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아니, 저와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유권을 주장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43:4)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아이들이 너무 예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볼지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나가다 보니, 보석이 진흙탕에 떨어졌습니다. 보석에 흙이 묻었습니다. 그래도 보석입니까? 아닙니까? 보석에 진흙이 묻어도 보석은 보석입니다.

우리가 때로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시험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보석은 보석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배롭게 여긴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인간이 이렇게 존귀한 것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뜻은 인간에게 이성과 양심과 도덕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 부분입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천하보다 귀한 것은 이 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이 영혼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는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여러분, 작품과 상품의 차이를 알지요? 다른 것과 비교가 가능한 것이면 상품입니다. 그러나 작품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자녀는 작품인가, 상품인가? 개는요? 그런데 개를 작품 같이 여기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작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절대로 자신이 별것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각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대단히 존귀한 자임을 알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사람이 사는 이유는?

3.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삽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데는 그만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작품으로 만든 데는 그만한 목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목적 없이 인간이 존재하겠는가?

목수는 목재를 가지고 여러 가지 가구를 만듭니다. 문짝도 만들고 탁자도, 의자도 만들고 집을 짓기도 합니다. 이렇게 목수가 만든 모든 물건 가운데 아무런 목적과 용도가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음 받은 것은 다 목적이 있습니다. 만든 사람을 위해 쓰임 받습니다.

, 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이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마이크의 존재 목적은 마이크 자체에 있습니까? 이것을 만든 사람에게 있습니까? 당연히 만든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이크는 절대로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만을 위해 일합니다. 어찌 마이크뿐입니까?

여기 꽃이 자기를 위해 존재하나요? 이 마이크가 자기를 위해 존재하나요? 이 컵이 자기를 위해 존재하나요? 아니지요. 오로지 이 컵을 만든 사람을 위하여, 값을 치르고 산 주인만을 위하여 쓰여 지기를 기뻐하고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거룩한 목적을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 거룩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 분의 기쁨과 찬양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20)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럼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삽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피조물은 오직 인간뿐입니다. 다른 피조물은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합니다. 이 꽃은 자기를 위해 피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그렇게 살까요?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믿고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매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아주 평범한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목적과 비전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고상한 목적이 고상한 사람을 만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산다면 그만큼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생은 마치 고장 난 자동차와 같았습니다. 누가 이 고장 난 인생을 고칠 수 있습니까?

어느 자동차 정비사가 여행 도중에 차가 고장이 나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차에 대해서는 뭐든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장 난 차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빨리 가자고 야단입니다. 그때 차를 몰고 가던 한 노신사가 차를 멈추더니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때 정비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1급 정비사에요. 그런데도 고칠 수 없습니다.”

노신사가 다시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와서 고장 난 차를 몇 군데 손으로 대자마자 곧 시동이 걸렸습니다. 노신사는 바로 그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한 포드 회장이었답니다. 그 덕분에 정비사 가족은 룰룰 랄랄신나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고장 난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인생의 정비사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새것을 만들어 주십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멋지고 신나는 인생 여행을 시작하십시오.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영혼의 찬양 71(‘반드시 내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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