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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영성
  • 설교일2019-03-31
  • 성경본문요한복음 12장 1-8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사순절 넷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길에 동행하는 절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순절에 주님과 여주동행을 잘하고 있습니까? 동행(同行)하는 것은 같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의 길에 동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주님의 고난 길에 동행하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고난의 길을 가로 막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홀로 외로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그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시고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가셨습니다. ‘비아돌로로사란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이르는,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저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쓸어 지고 넘어지고 채찍에 맞으며, 수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 길 지치신 주님의 모습

오 나의 주님 용서 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그때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 철없는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목에서누가 크냐를 다투었습니다.

스승은 십자가의 고난을 거듭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누가 크냐를 다투다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세 번째로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 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런데, 이 심각한 상황에 제자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이 말씀을 보세요.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2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중에 우리 형제를 주님의 좌우편 자리에 앉혀 주소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철이 없어도 이렇게 철이 없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적어도 3번씩이나 예고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 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십자가를 절대로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앞장서서, 십자가의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십자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못 깨달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주님의 고난 길에 동참하고 있는가.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런 와중에도 주님께 큰 위로를 드리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성도였습니다. 그녀는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 종종 들리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주간에도 들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이 집에는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3식구가 살았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었는데, 예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집에 심방 오실 때마다, 언니 마르다는 맛있는 음식으로 주님을 섬겼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 듣는 일에 푹 빠졌습니다.

특히 이날따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어떤 이벤트였을까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

마리아는 값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이때 부은 향유를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향유는 인도, 네팔 등지에서 특별히 수입한 것으로써, 아주 고가품이고, 그 시대의 명품이었습니다.

 

당시, 귀한 손님이 올 때, 이런 향유를 머리에 살짝 발라주는 것이 최고의 예의였는데, 마리아는 이 향유를 아예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어드렸습니다. 그때 부은 향유가 약 한 근, 340g 정도 되는데, 회계 담당이던 가룟 유다의 감정에 의하면, 값이 300데나리온 정도였습니다. 당시 오천 명의 남녀에게 떡을 먹이기 위해 드는 비용이 약 200 데나리온이었다면, 300데나리온은 엄청난 거금이며, 보통 샐러리맨의 일 년치 연봉입니다. 대략 3,000만 원 정도는 족히 될 것입니다. 놀랍지요?

 

마리아는 어떻게 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 전체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을까?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것을 거룩한 낭비라고 표현했습니다. 분명 허비 같고 낭비 같은데 그것은 거룩한 낭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2.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지극한 사랑이 거룩한 낭비로 나타났습니다.

성도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낭비입니다. 사랑하면 낭비가 저절로 됩니다. 사랑하면 아깝지 않으니까요. 사랑하면 따지지 않고 아낌없이 주고 싶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더 못 줘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낭비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낭비도 있고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남편들의 헌신 또한, 아낌없는 낭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도 낭비가 되던가요? 피 흘려 사신 교회를 위해서도 낭비가 되는가요? 낭비 같이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진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낭비가 되는데, 주님께는 낭비가 안 되는 거예요. 교회를 위해서도 낭비 같은 사랑은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부족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애인에게 사주는 것은 아깝지 않으면서, 부모님께 뭐 좀 사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마음이 어떠시겠어요? 서운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낭비입니다. 사랑은 100%입니다. ‘밴스 해브너라는 목사가 전적인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한 여성도가 와서 목사님, 왜 가능하지도 않은 전적인 헌신을 설교하십니까? 그냥 80, 90%만 헌신하고 사랑하라고 설교하는 것이 현실적인 도전이 아닐까요?” 물었습니다.

이때 해브너 목사님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 80, 90%만 사랑하고, 나머지 10%는 다른 여자에게 헌신해도 만족하겠습니까? 100% 헌신이 아닌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80%는 아내에게, 20%는 옆 집 아줌마에게 마음을 주면 되겠는가? 그래서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6:5).

마리아는 100%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큰 것입니다. 죽었던 오빠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여의고 삼남매가 외롭게 살고 있는데, 주님께서 자주 들리셔서,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심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마리아는 예수님 무릎 아래서,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랑, 이런 은혜가 너무 고마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시편 116: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지극한 사랑이 거룩한 낭비로 나타났습니다. 주님께 드린 마리아의 향유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졌던 마리아의 이 감사, 이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있기를 바랍니다. 제 마음에도 있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낭비 같은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가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벌레와 같고, 지렁이와 같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런 거룩한 낭비가 어디 있는가? 여러분은 이 낭비 같은 사랑을 믿는가? 이 낭비 같은 사랑을 경험했는가?

이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낭비를 할 차례입니다. 은혜를 갚아야지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낭비와 같은 사랑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순절에 마리아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한 사랑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여러분의 일생이 끝나기 전, 주님을 뵙기 전에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낭비 같은 사랑을 꼭 한번 보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이렇게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리는 것을 보고 가룟유다는 뭐라고 했는가?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 이러라

가룟 유다를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자라 할지라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이 드리는 것조차 아까웠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이 행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3.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직감하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따라 마리아에게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뵙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입니다. 때마침, 이것이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나중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부어드리려고 무덤을 찾았지만,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였습니다. 마리아가 이미,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가 왜 그토록 예수님을 감동시켰는지, 아는가? 3년씩이나 동거한 12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허영을 추구하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은 오직 마리아 한 여인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감동과 위로를 받으셨는지요.

우리도 이렇게, 예수님께서 큰 감동을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큰 감동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인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 주님이 이 같이, 우리의 한 일을 온 천하에 말하여 기억하리라, 하시겠는가? 여러분,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마리아가 드린 것이 비싼 재물 때문인가요? 우리가 10, 100억쯤 헌금하면 주님께서 이렇게 감격하셔서, 천하에 기념하라 하실까요? 그게 아닙니다. 그럼은요? 예수님께서 감동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가시는,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며칠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마리아의 예감이 어떤가요? 놀랍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감동이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천했습니다. 얼마나 잘 한 것인가?

여러분도 사랑할 기회, 봉사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런 감동이 올 때, 즉시 행동하십시오.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고 하나님, 이제는 한숨 좀 돌릴 수 있어서, 이제 봉사 좀 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날 데려가시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주님, 한 달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아니 일 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 이대로 서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후회합니다.

성도여러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봉사할 기회가 있음을 감사하고 놓치지 마십시오.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후회할지 모릅니다. 사랑하고 섬길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헌신하고 섬기십시오. 사람이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는데,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영성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4. 마리아는 항상 주님 발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성경에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오는데, 그때 마리아의 태도를 보십시오.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어디에 앉아서, 뭘 했다고요?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자리가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아주 좋은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칭찬하셨습니다. 은혜 받으려면, 자리부터 바꾸고 태도부터 바꾸십시오. 말씀이 가까운 자리가 좋은 자리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은 예배 때마다, 성도들의 자리를 확인하면서 출석을 불렀답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성도들 보고 말하기를 여러분은 은혜의 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분들 보고는 은혜의 은자리고, 그 뒷줄은 은혜의 동자리고, 그리고 저 맨 뒷줄은 잠자리, 2층석은 아예 대학교를 설립했대요. 무슨 대학? 잠꼬대! 그리고 예배 시간에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은 무슨 대학? 서성대!

마리아는 항상 주님 발아래 앉아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그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의 자세를 보십시오.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제 마리아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지요? 마리아는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때 주님과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눈과 눈이 부딪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과의 믿음과 신뢰관계가 두터워졌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영적인 민감함과 통찰력도 생겼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고민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주님께 옥합의 향유가 아까울 리가 있겠는가? 아낌없이, 진심함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원하는가? 마리아처럼 주님 발아래 앉아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님 앞에 앉아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마리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면, 우리는 기록된 말씀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믿음도 생기고, 사랑도 생길 것입니다.

혹시 바쁘다고 말씀을 외면하고 주님을 멀리하고 살고 있는가. 마르다처럼 바쁘고, 제자들처럼 세상 영광을 구하고, 육신의 일에 바쁜가. 그렇다면 언제 주님의 음성을 듣겠는가? 언제 주님의 얼굴을 뵙는가? 그러면 주님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십자가의 길을 가로 막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향유를 부은 마리아 영성을 사모합시다. 매일 주님과 일대일로 만나야 합니다. 매일 기도를 생활화 하십시오. 항상 주님 발아래 앉아,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얼굴 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의찬양 39장을 부릅니다(‘내게 있는 향유 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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