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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설교일2019-08-18
  • 성경본문마태복음 9장 14-17절
  • 설교자신만교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마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다같이)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들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의 배경이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고, 새로운 리더십을 맞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교회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루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세례요한은 헤롯왕을 책망하다가 투옥된 상태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과 기도로 철저한 경건생활과 금욕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지내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절제와 금욕생활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항의성 질문을 한 것입니다.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 하나이까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금식을 매우 장려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2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습니다. 그 외에도 틈만 나면 수시로 금식하였고, 이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습니다. 자기 의가 되었지요. 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세례요한의 제자들 입장에서, 자기들도 금식하고 바리새인들도 금식하는데, 왜 유독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따졌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은 무척 잘하고 있는데, 예수님 제자들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의로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바리새주의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아니, 대단히 위험한 태도입니다. 이런 자기 의로 구원 받는 다고 생각한다면, 저들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요한의 제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고자, 오늘의 3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혼인집 손님 비유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여기 혼인집 손님이란 신랑의 결혼예식을 돕기 위해 온, 신랑 친구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할 때, 보통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이는데, 마지막 날,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신부 집에 갈 때, 친구들이 동행해서 들러리가 돼주었던 것입니다.

이때, 신랑친구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친구 결혼식에 와서 금식을 한다든가, 슬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시, 혼인잔치를 하는 동안에는 유대교의 금식일이 들어 있어도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잔치도 중요하니까요.

이 비유에서 혼인집 신랑은 물론 예수님이고, 혼인집에 손님들은 예수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혼인집에 신랑과 함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슬퍼하며 금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9:15)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이 붙잡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그때에는 금식하며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금식도 다 때가 있는 것이지, 아무 때나 하고 그걸 무슨 자랑거리인양 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자기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중심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자신의 신앙을 저해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결국은 자기중심의 편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도 믿지를 아니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손해인가요.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이 생베조각 비유입니다. 16절을 보세요.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무슨 뜻인가? 낡은 옷이 헤어졌다고 해서,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새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베 조각은 신축성이 있어서, 헌옷을 잡아당기게 되고 결국 기운 것이 오히려 더 헤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지요? 옛날 옷을 기워 입던 어르신들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복음을 말하고, 낡은 옷은 유대교의 낡은 전통이나 의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너희가 그렇게 강조하는 금식이라는 전통과 의식은 낡은 옷에 불과한 것이니, 생베조각 같은 복음과는 같이 섞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유가 새포도주 비유입니다. 17절입니다.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다.” 가죽부대란 사막에서 유목민들이 쓰는 가죽 부대를 가리킵니다. 요즘에는 좋은 그릇이나 용기가 많이 나와 있지만, 당시는 모든 도구가 부족하니까, 낡은 가죽부대를 자루로 썼습니다.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통 채로 벗겨낸 후에, 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기워서, 부대로 썼습니다. 상상이 되는가요?

그런데, 문제는 이 가죽부대가 오래 되면, 신축성이 떨어져서, 뻣뻣해지고, 바느질한 부분이 느슨해집니다. 여기다가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담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새 포도주가 부글부글 발효되면서 부풀어 올라와, 결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오래된 유대교의 낡은 전통과 관습을 가리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왜 금식을 안 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을 낡은 유대교의 의식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금식과 같은 유대교의 낡은 전통에다가 생명력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복음의 새 포도주를 옛사람의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말아야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생각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예수 믿고도 안 변하는 사람은 여기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자 예수의 복음도 듣고 믿었습니다. 성령도 체험했습니다. 새 포도주 맛을 본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은사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변하는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았기 때문입니.

여러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요리했어도, 아무 막그릇에 담아놓으면 어때요? 맛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그릇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맛도 있고 멋도 있습니다.

여러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다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새 포도주도 버립니다.

여러분, 혼인집에 와서 금식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려는 사람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으려는 사람입니다. 결국은 낡은 가죽부대가 터지고 아까운 포도주도 쏟아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적용시키면, 여기 낡은 가죽부대는 옛 사람, 옛 생활을 가리킵니다. 옛 사람의 습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이 같은 옛 사람의 사고와 습관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적당히 옛 것과 새것을 꿰매 입고 다니지 마십시오. 옛사람을 벗어버리십시오. 누더기 옷을 벗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한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바로 이 말씀입니다.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아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고 새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라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어진 임금이 민정시찰을 다니다가 다리 밑에서 거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임금은 측은히 여겨, 궁궐로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혀 놓으니, 아주 귀여운 소년이 되었습니다.

마침 임금이 후사가 없던 터라, 왕후와 의논하여 그 거지 애를 왕자로 맞아들였습니다. 새 왕자가 생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온 궁궐이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제는 다리 밑에 거지가 아니라, 당당한 임금의 아들이요, 왕자가 된 것입니다. 임금은 자기 방 옆에 왕자 방을 꾸미고 고급 침대에 비단 이불을 펴고 그곳에서 왕자가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아침에 왕자 방에 가보니, 왕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왕자를 찾아오라고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궁궐을 샅샅이 뒤져도 왕자는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때 지혜 있는 신하 한 사람이 급히, 전에 왕자가 살던 다리 밑으로 가보았습니다. 세상에 그곳에 왕자가 거적 떼기를 덮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시 왕자를 궁중으로 데려왔으나, 다음날 밤에도 왕자는 궁을 빠져나가, 다리 밑에 더러운 거적 떼기를 쓰고 잠을 잤습니다.

이튿날, 임금 앞에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왕자는 도무지 고급 침대와 비단 이불에선 잠이 오지 않으니, 밤에만 다리 밑에 가서 자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왕은 왕자가 되고서도 여전히 거지생활을 버리지 못 하느냐고 꾸짖으면서, 만일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면, 왕자의 입적을 취소해버리겠다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당신의 얘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당신의 신분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말, 눈부신 신분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옛사람의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다리 밑에서 거적 떼기를 덮고 사는가? 안 될 일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어디에 담으셨는가?

2. 새 포도주인 예수의 복음을 새 부대인 초대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새시대를 여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의 시대요, 율법시대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새로운 복음시대가 왔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상을 둘러엎으시고 채찍으로 때리시며, 장사꾼들을 내좇으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유대교라는 가죽 부대에 넣지 않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복음은 새포도주처럼 팽창력과 확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다이나믹합니다. 예수님은 새 복음을 담을 수 있는 새 교회를 설계하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렇게,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 설계도대로 시공되어진 교회가 바로 1세기의 초대교회요, 사도행전의 교회입니다. 예수님께 3년간 훈련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사도바울이 주된 사역자였습니다.

이 초대교회는 그 시대적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와 바울이 중심이 된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의 그 모진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아시아와 유럽과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진 박해에도 수백 년 동안, 카타쿰 속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결국 2%의 초대교인들은 거대한 로마제국을 굴복시켰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역사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새 목사님과 함께 우리 화평교회에서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새 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는 분입니다. 기도를 많이 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앞으로 우리는 교회는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랬던 교회가 서기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기독교는 급속도로 제도화되고 형식화되고 생명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중세기에 와서 그 타락상이 극에 달했습니다. 다시 낡은 가죽부대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머리 깎인 삼손의 힘 빠진 모습이 됐습니다. 그때, 마틴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 우리교회는 과연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3. 우리교회도 낡은 가죽부대를 개혁하고 변화를 추구해야합니다.

오늘의 교회들 역시 낡은 가죽부대에 안주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를 선도해야하는 교회, 옛날이여!”만 찾고 고리타분하면 되겠는가?

우리교회도 개혁과 변화를 추진해야합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개혁하여, 새 부대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새로운 리더십을 맞게 됩니다. 이 기회에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로운 목사님과 성도들이 뜻을 같이 하여,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데 나서야 합니다.

앞으로, 새 목사님이 왔을 때, 여러분이 결코 해서는 안 될 금지어가 있습니다. 신 목사님은 안 그러셨는데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요.” 이런 말 하면 돼요? 안 돼요? 안 됩니다. 새 목사와 제가 똑같아야 됩니까? 어떻게 똑같은가? 사람이 다른데요. 달라야 됩니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래야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소위 세상에서 허니문 기간이란 말을 씁니다. 대통령으로 뽑아놨으면, 6개월이고 1년이고 말하지 않고 적극 도와주고 밀어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건 된다, 안 된다하면, 어떻게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6개월이고 1년 동안은 새 목사님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십시오. 저극 순종해보세요. 당회에서도 그렇게 한 번 밀어주세요.

새로운 목사님의 청빙과정이 다 끝났습니다. 새 목사님은 내 주간에 이사를 옵니다. 그리고 9월 첫 주일, 부임설교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취임식은 10월 셋째주일에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소위 동사목회 기간으로, 함께 공동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 공동목회의 의의는 안정적으로 새 목사에게 목회를 이양하는 것입니다. 안정적으로 리더십을 교체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세밀하게 이양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왔으니,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본으로 놓고 더 발전시키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예를 보면, 이 과정에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이양과정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신자들이 흔들리기도 하고 이탈하기도 합니다. 성도여러분, 조금도 흔들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진짜 귀한 목사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진짜 요즘 보기 드문 목사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목사입니다

리더십 교체가 크게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새 목사님이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명실공이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교회를 보며,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영혼의찬양 31장입니다(‘나 주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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